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삠참이

동아를 보면 사람들이 왜 시를 쓰는지 알 것 같아



은호야. 나 실은 처음부터 네가 정말 싫었어. 처음부터 잘 지낼 수 있을리가 없었어. 난 너를 만나기도 전부터 미워하고 있었으니까.



"동아는 여전히 다정하네."

"...지금. 비꼬는거야?"

"내가? 동아를? 설마. 여전히 싫어죽겠는 자식한테도 친절하게 대해주는구나 싶었던 것 뿐이야. 아직도 꼬였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가 싫어하는 누군가가 '자신'이면 괜찮지만 '남'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은호는 생각한거겠지?

그럼 은호에게 '자신'은 어떤 존재였던걸까?


당시 아버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산모의 생명을 선택 하셨지만 어머니는 손쓸 틈도 없이 바로 중태에 빠지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를 향한 내 사랑은 무언가를 갚아나가는 것과 닮아있었다.


나는 거기서 너무나도 쉽게 은호를 찾을 수 있었다. 어떤 의심도 남기지 않는 시였다.

은호와는 24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붙어있는데...은호는 대체 언제 이런 생각을 하는걸까?

나는 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앞으로 은호의 글만큼은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 세미나나 강의로 늦으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마루에서 혼자 잠들면 느즈막히 돌아온 아버지는

혀를 한 번 쯧 차시고 내가 깨지않도록 조심스럽게 안아서 침대로 옮겨주시곤 했다.

키가 큰 아버지에게 들어올려지는 감각이 좋아서 몇 번 자는 척 한 적도 있다. 아셨을거다. 워낙 잔꾀에

넘어가지 않는 분이시니. 그래도...한숨을 쉬면서 옮겨주셨다. 그게 내게 허용된 유일한 어리광이었다.



12살 쯤 나는 텅 빈 마루에서 잠드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귀가하시고도 나를 침실로

옮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 처음 어린 마음에도 비참함이란게 뭔지 알았다.

노력하는데도 사랑받지 못하는것은 비참하구나, 하고 실은 깨달은지 오래면서 모른척 해왔다.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뿜는 독에 스스로 녹아내릴 것 같다.


대답이 없는 은호가 불안하고 초조하고, 초조하고, 초조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내가 아는 모든 죽음은 늘 준비없이 다가왔으니까.


나한테도 뭔가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다 동아가 알려준 걸거야. 다시 한 번 그때로 돌아가고싶어.

네가 좋으면서도 많이 미웠어, 동아한테 특별히 잘못이 있는것도 아니었는데. 동아한테 굳이 잘못이 있다면...

동아가 완벽하게 못된 아이가 되지 못한 거겠지. 바꿔말하면 그건...동아 잘못이 아닌거야. 

우린 이상한 애들이 아니라 정말...불쌍한 애들이었어.



"은호야...나...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네가 정말 미웠어.."

"드디어 말해주는구나. 괜찮아.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그건 본인 이야기였을까?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이제 나는 보내야만 하는 것에 슬퍼하지 않는다.


동아를 보면...사람들이 왜 시를 쓰는지 알 것 같아.


은호가 웃는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내 삶 뿐이다.

찬란한 삶... 황금빛으로 흘러내리는 노을... 다정하게 내 등을 밀어주는 바람과 맨 발로 젖은 흙을 밟았을 때의 그 느낌...

작게 움직이는 모든 생명들. 그 속의 별처럼 많은 사랑. 사랑하는 것에서 해방될 수 없는 삶...

내가 너무나 사랑하던 사람들. 나를 지상과 연결해준 어머니...

하지만 은호를 선택할 것이다.



생명예찬,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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