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삠참이

생은 예측불허

우리의 블로그 일주년인 11월 24일을 딱 30분 남겨둔 지금, 새 집의 첫 글을 쓰기 시작한다.


생은 예측불허, 그래서 의미를 가진다고 누가 말했던가. 우와 왠지 있어보인다! 라고 생각한 어린 삠참이와 달리

그 글에 달린 수 많은 댓글들은 "네가 예측불허로 살아봐라 시발로마 인생ㅈ같네" 라고 외치고 있더랜다. 물론 난 삶을 충분히 

살아봤다고 말하기엔 어리지만, 요즘 들어 정말 생은 예측불허고 모든 기쁨과 고통도 그로인해 생긴다는걸 조금이나마 깨닫고 있다.

딱 일 년전에, 난 예상치도 못하게 어울이랑 블로그를 시작했고, 또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도 이렇게 일 주년이 된 날 블로그를 옮겼고.

초대장을 가진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올 수 있던 티스토리는 어느새 모두에게 열려 있었고. 글 하나 쓰기도 어려워하던 나는 

매주 글을 쓰는 동아리에 꼬박꼬박 나가고 있고. 발표 할 때마다 벌벌 떨던 나는 저번주 개인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젠 나름 발표를 즐길 것만 같다. 유리가면을 읽으며 연극에 대한 환상을 키워나가던 어린 오타쿠는 어떻게든 극 하나를 올렸고. 내년에도 우리가 이만큼 자주 만나게 될까?

라고 궁금해 했던 어울이와 나는 올해도 딱 그만큼 혹은 더 많이 만났고, 꿈만 같이 상상하던 웹툰 구상을 나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아참 몇년 내내 고민하던 숏컷도 해버렸다! 하기전엔 무서웠는데 이젠 더 짧아지고만 싶다.


기쁨과 동시에 사실 예측불허로 인해 생기는 고통도 어느정도는 이해한다. 마치 이 전 블로그에 올린 안정감에 대한 글 같이.

무언가를 무척이나 사랑하다가도 또 무척이나 미워지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못할 것만 같고. 

세상이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것 같다가도 또 온전히 외로워진다. 난 가만히 있는데 자꾸 나를 뒤 흔드는 일들이 생긴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빠는 자꾸 꿈에 나오고. 화내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까봐 무서워지고. 

스피노자가 그러던데 어차피 모든 일들은 다 필연적인거니까 받아들이고 평점심을 유지하래. 그게 말처럼 쉽나 스피발놈


쨌든 그럼에도 생은 예측불허다. 내가 뭐 아무리 발놈이니 뭐니 한들 나는 커다란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고 

나에게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오늘 아침에 갑자기 폭설이 와서 흠뻑 젖은 신발이라던가,

블로그에 갑자기 무단침입한 깜찍한 부원이라던가 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많은 사람들, 또 내 선택의 결과들....

그럼에도 어쨌든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최고의 선택은 아닐지라도 또 최선의 선택을 하는거. 눈이 온 김에 긴 낮잠을 잔다던가

어울이랑 새 집을 찾아서 기쁘다고, 하루가 가기 전에 글을 올리는거. 나에게 들이닥친 일들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무슨 일들이 또 들이닥칠지 기대하기.


난 이번에도 내일을 기대한다. 

저번 블로그 글 중에서도 수능후기는 참 마음이 많이 가는 포스팅인데, 거기에 그런 말이 있다. 어제와 오늘의 시간들이 미래의 날 

어디로 데려가 줄지 모르겠다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을 해준다면, 글쎄? 네가 상상치도 못한 일들이 그 후에 벌어진다고,

뭐든 기대해도 좋다고. 또 용기를 가지라고, 넌 가능성이 아주 많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일 년 어린 삠참이는 조금 두려워할 것이다. 그리고 기대할 거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이제 조금 있으면 넘어가는 한 해가 날 어디로 이끌어줄지, 이 블로그엔 무슨 글들이 쌓이게 될지 또 무엇을 사랑하고 미워하게 될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여느때처럼 최선을 택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든지 애써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을 기대할 것이다.

생은 예측불허고, 그리하여 의미를 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