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레드벨벳의 파워업을 들었다. 작년에 여름 방학내내 학교로 연극연습하러 다니며 들었던 노래다. 나는 어느 한 시간을 노래로 남겨놓는걸 좋아한다. 그래서 훗날 이 노래를 들으면 지금이 떠오르길 바라며 종종 특정한 노래를 세뇌하듯이 듣곤 한다. 내 계락은 꽤 효과적으로 성공했다! 거의 일년만에 듣는데도, 양산을 쓰고 걸어가던 그 뜨겁던 길과 에어컨이 틀어져있던 약간 어두운 소강당, 샌들과 대본, 약간 바닥이 차갑던 무대 세트장과 옆에서 들리던 밴드부의 연주와 그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애틋해졌다. 분명 그 당시에 즐거운 순간은 별로 많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연극부 사람들은 나와 안 맞았고, 연기하며 지적받는건 무서웠고, 매일같이 먼 학교로 가는건 귀찮았다. 진지하게 때려치고 싶던 순간도 많았다. 그래도 끝나고 나면 추억이 돼, 라는 언니 친구들의 말과 이것도 언젠가 그리울까? 라는 마음속 물음을 믿을 뿐이었다. 그리고 일년쯤이 지난 지금, 웃기게도 파워업을 들으며 그리움에 젖어 아. 연극을 다시 할 걸 그랬나, 하고 조금은 후회해보는 것이다. 물론 다시 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했으면 또 혼나면서 찔찔 울었겠지. 크크
그리고 어김없이 올해도 다시 여름이 찾아온다. 왜 여름은 유난히 그리운 느낌이 날까. 여름은 밤에 찾아온다. 어느날 긴 팔이 조금 덥다 싶을때 밤거리를 걸어오다보면 익숙한 냄새를 맡고 여름이 왔다는걸 깨닫는 것이다. 종강이 다가워서 그런지 아니면 여름이 나에게 특별해서 그런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겪어온 여름들을 요새 많이 떠올린다. 일 학년때 어울이와 수영다니던 기억이나 프로듀스 101에 미쳐있던 기억, 심란한 마음에 공부하다 나가 걷던 밤거리나 작년에 연극을 다니고 과외를 하던 그런 기억들. 매번 여름이 특별했기 때문에 올해 여름은 또 어떤 기억을 남겨야할까, 벌써부터 고민에 몸부림치고 있다.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고 그래서 과거를 항상 그리워한다. 과거뿐만아니라 현재도 그리워하고, 아직 지나가지 않은 올해 여름이나 대학생활을 벌써 그리워하는거보면 난 미래도 그리워하는 사람이겠지. 그래서 우연히 웹툰에서 본 대사가 사무쳤다. 우리는 추억을 살고 있는 거구나. 라는 대사. 난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스물두살을 살고 있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같던 나 자신은 알게모르게 많이 변했다. 가끔 어디선가 어른 취급을 받을때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영원토록 벗지않을 것 같던 교복은 이제 장롱속에서 묵힌지 몇년됐고... 이 글을 왜 쓰게됐지. 그냥 요즘 너무 여름을 타는 것 같아서 뭐든 뱉어버리고 싶었다. 계획했던 계절학기 듣기는 틀어져버렸고, 종강을 코앞에 둬 조금 싱숭생숭하다. 평생 해보지 않았던 집보러다니기도 해야한다! 대학 생활은 이제 일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고냥 과거와 현재를 많이 생각해봤다. 현재가 지나가는데 너무 아쉬워서, 뭐든 기억에 남는 짓을 해야한다고 내 마음은 발등에 불난 사람마냥 날뛰고 있으니까. 미래는 예측불허고, 언제나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난 무언가 재밌는 일을 해내고 말 것이고, 이번 여름은 어느때보다도 특별하게 남을 것이다. 재밌지 않았더라도 일년뒤엔 요즘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오늘을 떠올릴 것이다. 연극할때는 매일 울었지만, 지금은 애틋한 것처럼. 매번 오는 것인데도 우리의 여름은 매번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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