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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제본소> 후기

<야매제본소> 후기




올해 여름-가을쯤, 서점 '별책부록'에서 진행하는 손제본 워크숍 <야매제본소>참여했었다. 기억도 되살릴 겸 후기를 써봄.


야매제본소 수업에서는 중철제본, 실제본, 인조가죽제본, 떡제본, 양장제본 등, 책이나 공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본방식들을 손으로 하는 걸 배울 수 있다. 2주 과정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만 수업하기 때문에 수업시간은 총 4-5시간 정도였고, 수강료는 7만원이었다. 내겐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ㅠㅠ 돈이 아까운 수업은 아니었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가르쳐 주시고, 활용만 잘 한다면 엄청 유용할 것 같다. 최근엔 야매제본소 24기를 모집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놓치더라도 상당히 꾸준히(약 한달 간격?) 클래스를 여시는 것 같으니 관심이 있다면 별책부록 인스타그램에 들러 보면 좋을듯


클래스룸은 별책부록 서점과는 동떨어진 데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수도권 4호선 숙명여대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잘 탄다면 10분, 걸어가면 15-20분 정도 걸린다. 근데 대체 버스가 어디에 오는지조차 알 수가 없게 되어있어서 초행길엔 버스 타는 걸 포기하는 게 좋음. 심지어 택시 승차거부마저 당했다.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가...ㅠ 걸어가는 건 쭉 오르막길인데다가 내가 갔을땐 아래와 같은 무시무시한 계단까지 있었어서(현재는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수업 시작하기도 전에 의욕이 다 떨어졌던...






등골이 서늘해지는 높이였다.. (속으로 혼자 악마의 계단이라고 부름)




클래스룸에 도착하면 아래 사진처럼 강사분이 필요한 도구들을 다 미리 세팅해 두신 상태다. 강사분은 (제본과 상관없는)본업이 따로 있으신 남자분이셨다. 특이한 형식의 책을 내본 경험이 많으시다.(제일 기억에 남는건 영수증 종이에 프린트해서 제본한 만화였다) 그렇다보니 전문적이거나 세밀한 기술을 배우게 되지는 않지만 집에서 개인이 직접 제본을 해볼 수 있다는건 참 매력적이다. 제본 입문과정 같은 느낌. 연습단계만 잘 거친다면 나중엔 상당히 퀄리티 있는 노트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을듯...?





수업 정원은 8-9명 정도다. 나처럼 직접 공책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오신 분도 계셨고, 사은품을 직접 제작해서 배포하고 싶으시다는 분도 계셨다. 소규모라 (재단기 소리와 망치소리를 빼면)상당히 조용하지만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강사분도 친절하셨고... 선곡센스가 좋으셔서 아주 분위기있는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다. 난 음알못이지만 상당히 많은 띵곡을 알아왔음. 되게 부담없는 분위기라 좋았다. 잘 못하거나 설명을 놓치더라도 쫄지 않아도 되는 착한 분위기. 내 거 망치니까 강사분이 '제가 만든 거라도 가져가실래요?ㅎㅎ...' 하고 제안도 해주셨다. 흑흑...


직접 손으로 할 수 있는 제본 방식들이라 구하기 힘들거나 비싼 거창한 도구가 필요하진 않다. 인조가죽이나 하드보드, 제본용 실 같은 그때그때 필요한 재료만 사면 되지만, 재단기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스테이플러만 찍으면 그만인 중철제본도 재단기가 없으면 내가 초딩때 공책 만들어보겠다고 A4용지 쌓아놓고 스테이플러 찍었던 종이더미랑 다를 게 없어진다. 재단기가 딱히 필요해본 적이 살면서 없었는데 집에 있으면 많은 부분에서 편하긴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찾아보니 A4크기 재단기는 15000원 정도밖에 안 한다.





공책이 좀 두꺼워지면 재단기 쓰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 온 체중을 실어서 눌러야 한다.




아래는 실제본. 나는 손재주가 상당히 없는 편이라 중고등학생 때 자수나 옷바느질 이런 거 하면 항상 응...그래... 싶은 결과물이 나오곤 했어서 '실'제본이란 말에 엄청 쫄았었지만, 사실 중철제본만큼 쉬운 방법인 것 같다(얇은 공책일 때만). 송곳으로 구멍 뚫고 바늘을 넣었다 뺐다만 해주면 됨.





아래는 인조가죽커버 제본이다. 저 망치와 펀치로 가죽에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 포스트를 끼워 종이들과 가죽커버를 고정하는 방식이다. 생전 안해본 망치질을 책 만들면서 했다.





아래는 떡제본. 보통 인쇄소에선 어떤 특수한 풀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런 걸 쓸 수는 없으니 대신 글루건을 사용했다. 뭔가 드디어 진짜 제본을 하는 것 같고 재밌었다. 내가 직접 공책을 만든다면 아마 이 방식으로 만들겠지?





그리고 이건 떡제본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양장제본을 하는 과정인데...역시 손재주가 없다. 제일 기대했던 방식인데 제일 망쳤다. 이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 때 2019년 다이어리를 내 취향에 맞게 디자인해서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같다.

양장제본은 손이 많이 간다. 저렇게 하드보드에 표지를 붙인 걸 가리기 위해 내지와 표지 사이에 면지를 붙인다. 깔끔하게 붙이는 것도 상당한 스킬이 필요하다. 강사님이 "집에 쓰레기같은 책 하나씩 있으시죠? 그거 뜯어서 한번 분석해보세요" 하셨는데, 난 한번 <언어의 온도>를 뜯어볼 생각이다.





2주 과정의 결실! 차례대로 중철-실-인조가죽-떡(무선)-양장제본이다. 작고 허술해서 어디 써먹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늘어놓으니 뿌듯하다. 아 까먹기 전에 다시 연습해 봐야 하는데....




제본 수업을 듣고 나니까 읽는 책들의 제본과정이 대충 그려지기 시작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예를 들어 어제 사온 책은 실+양장 방식으로 제본되어 있었는데 종이가 너무 쩍쩍 갈라져서 잘 된 제본은 아닌 듯했고



이렇게 풀칠이 존나게 대충 되어있는 책도 발견했다.....


이제 신경쓰일 것이 하나 더 늘어났다. 처음 폰트에 관심가지기 시작한 뒤로 점점 더 예민해져서 특정 폰트가 아닌 책은 꺼리게 되고, 종이 종류에 관심가진 뒤로는 특정 질감의 종이로 된 책만 샀는데 이젠 제본 상태까지 그 리스트에 추가되게 생겼다. 하지만 어쨌든 알고 볼 수 있는 게 하나 늘어났다는 것은 기쁘다. 새로운 문 하나가 열린 기분. 어쩌다 책 편집도 해봤고, 종이랑 제본에 대해서도 대강 알게 됐으니 이제 (글쓰기만 빼면)책 제작 과정엔 나름 다 참여해본 셈 아닌가.

며칠 전에 중3때 쓴 일기 비슷한 걸 발견했는데, 이미 그때부터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단 걸 알았다(정확히는 '출판사를 창업하고 싶다'고 적혀있었는데, 종이책은 이제 안 팔린다는 엄마의 지적에 좌절됐던 꿈.....). 지금까지도 항상 책 편집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야매제본소 수업 들으면서 그 마음이 더 강해졌다. 사실 출판사 편집부라고 딱히 인쇄/제본 과정에 참여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종이책 만드는 과정이라면 뭐든 재밌지 않을까. 출판사 관계자 분들 보고 계시다면 저를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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