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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전력3회] Midas

어울

미완성 흑흑흑 ㅜㅜㅜㅜ 앞으로는 더 성실하게 살겠읍니다





소년이 처음 숲에서 걸어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를 숲의 품에서 나고 길러진 아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신비한 숲의 힘이 인간 소년을 그곳에서 태어나게 했는지, 아니면 그저 무책임한 부모가 그를 어릴 때 숲에 버리고 갔을 뿐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흙보다 조금 옅은 연갈색 머리카락, 햇빛의 흔적인 주근깨와 초록빛 눈동자 같은 것들 덕에, 소년은 마치 숲의 색깔을 그대로 따와 칠해낸 아이처럼 보였다. 묘한 오라를 가진 그 소년은 꼭 사람들이 모르는 자연의 비밀을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란 없었으므로, 어색한 걸음걸이로 마을에 들어선 소년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어른들은 잠시 소년이 방황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를 데리고 마을의 기도원으로 갔다. 숲 같은 소년에 대한 얘기는 금방 퍼졌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소년을 전령이라고 여겼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숲의 힘 같은 건 없다고 말하면서도 소년의 존재에만은 모두들 남몰래 들떠 있었다.

소년은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입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인간의 언어도, 그들이 애써 하는 몸짓도 알아듣지 못했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바깥세상의 언어를 공부하는 학자, 신생아들을 보살피는 교사, 기도원의 원장 등이 동원되어 소년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그는 새로운 것들에 잠시 눈길을 줄 뿐 어떤 의문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소년은 낯선 환경이나 사람들이 무서운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치 그곳에 있지도 않은 어떤 것을 불안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가 지나서야 사람들은 의사를 데려올 수 있었다. 남의 머릿속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 덕에 언제나 바쁘지만 존경받는 의사였다. 소년은 그동안 사람들이 건네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로, 그토록 가만히 있는 것에 익숙하기라도 한 듯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의사에게 소년이 어디서 왔는지, 부모가 있는지, 능력이 무엇인지, 정말로 신의 전령인지 등등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의사는 소년 앞에 앉아서, 항상 환자들에게 그러듯 소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함일 뿐, 별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의사는 소년의 떨리는 눈을 마주하고, 그 선명한 초록빛을 응시하며, 그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들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소년의 머릿속은 온통 푸름뿐이었다. 그가 자란 곳은 하늘과 나무, 호수만이 가득한 낙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소년은 어떤 시점 이전의 기억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억의 절단면은 마치 칼로 잘라낸 듯 분명했다. 의사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해주며,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어쩌면 소년의 능력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신 그는 남아 있는 기억들을 살폈다. 소년의 머릿속에는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없었다. 목소리를 내는 법은 알고 있을까?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까? 의사는 소년에게 연민을 느꼈다. 평생을 사람과 단절되어 외로이 살았지만, 자신의 모든 애정을 숲에 쏟으며 자라온 소년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소년의 손을 의사는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 조금 늦긴 했지만 교육을 받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숲에서 기른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소년을 마을에서 행복하게 자라도록 해 주고 싶었다. 능력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꼭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 의사는 그런 확신을 하며, 소년의 손을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서 숲 내음이 풍기는 것만 같았다. 의사의 부드러운 손길은 소년의 불안함을 누그러뜨렸다. 소년은 볼을 따뜻한 색으로 붉히며 의사를 올려다보았다. 의사를 보는 그의 눈길에는 조그만 기대와 애정이 서려 있었다.

의사가 비명을 질렀다. 둘 사이에 번지는 듯한 유대감에 설레 하며 모여들어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의사의 시선을 좇았다. 그곳에는 끝을 잃어버린 의사의 팔이 있었다. 소년이 잡고 있던 의사의 손이 검게 부스러져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잊히지 않는 어떤 토끼의 죽음이 있었다.

그날, 소년이 품에 안아 재로 만들어버린 다람쥐의 마지막 조각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소년이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무력한 눈물이 차올라 금세 아래로 떨어졌다. 손에 남은 혐오스러운 까만 얼룩이 눈물에 씻겨나갔다. 손바닥에 가로막히지 않고 떨어진 눈물은 흙에 핀 새싹을 죽였고, 그는 자신의 눈물마저 저주받았음을 이해했다. 그는 울면서, 오래도록 자신의 발아래 떨어진 다람쥐의 흔적을 쳐다보았다.

하늘의 색이 바뀔 때쯤 소년은 문득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을 들었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토끼들이 재빨리 풀들 사이사이에 귀를 낮추고 숨는 것이 보였다. 풀 뒤에 전혀 숨겨지지 않은, 필사적으로 웅크린 작은 몸뚱이들은, 저 다람쥐와 같은 끔찍한 최후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토끼들의 공포였다. 그는 또다시 절망하면서, 토끼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몸을 아주 서서히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맨발이 밟고 서 있던 것이 흙이 아니라 타버린 잿더미라는 것을 알았다. 토끼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뒷걸음질했다. 그는 잠든 아기여우 옆을 지나갈 때 그러곤 했던 것처럼 숨을 죽이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나는 아무것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해주듯.

하지만 사실은 그가 토끼들을 위해 딛고 있는 느린 발걸음마저 발 아래 깔린 풀들과 나뭇가지의 죽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소년은 문득 깨달았다.

그 순간 소년은 힘을 잃고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 소리에 놀란 토끼들이 일제히 풀숲에서 뛰쳐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중엔 아직 도망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어린 토끼는 혹시나 소년이 다시 일어서서 자신을 쫓아오지 않을까 겁에 질려 소년의 반대편으로 있는 힘껏 달음박질을 쳤다. 아주 멀리 달리면서도 토끼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이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토끼는 매 발걸음마다 가쁘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다시 도약하는 순간, 토끼의 발 아래에는 더 이상 디딜 곳이 없었다. 그곳은 호수였다. 어두워진 숲에서는 땅과 물의 경계가 흐릿해지곤 했다. 

소년은 토끼가 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는 토끼가 당장 물을 헤치고 나와 호수 반대편으로 헤엄쳐 갈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 삶에의 집착이 남아 있는 어린 토끼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자위했다. 하지만 토끼는 다시는 수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또다른 생명마저 해칠까 두려움에 움직이지도 못하는 채로, 소년은 멀리서 주저앉아 토끼가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았다. 생명력을 뽐내며, 살기 위하여 자신에게서 도망치던 토끼가 한순간에 물 아래로 처박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토끼는 발버둥 한 번 쳐보지 못하고 수면 밑으로 사라졌다. 호수엔 물결조차 오래 일지 않았다. 마치 원래 없기라도 했던 것처럼.

소년에게는 기억이 많지 않았다. 오래된 기억들은 어쩐지 소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어디론가 슬며시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소년에게서 도망치며, 뛰어오른 그대로 호수 안으로 거꾸러져, 물속으로 가라앉던 토끼. 그것은 소년의 안구에 맺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결코 잊어버릴 수 없었다. 모든 것에는 그 작은 토끼의 죽음이 있었다.


숲은 소년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나무들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그 아래에 손을 넣어 손등 위로 나뭇잎의 그림자가 지는 것을 보길 좋아했다. 크고 작은 생명들이 소년이 그곳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의 몸을 타넘는 감각을 좋아했다. 하지만 소년은 깨달아야 했다. 숲에서 종종 보이던 불에 탄 듯한 검정은 원래부터 숲에 있던 게 아니라는 것을, 품에 안은 생명이 어느 순간 갑자기 까만 재가 되어 바스라지는 것이 결코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을 깨달은 뒤로 그는 최대한 숲속을 멀리 가지 않고 같은 자리만을 맴돌았다. 자신의 발길이 닿은 그 무엇을 또 바스러뜨릴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어째서 어떤 것들은 부서지지 않고 어떤 것들만이 부서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그를 숲속 한구석에 묶어두었다. 그곳은 소년이 이미 모두 까맣게 부서트려, 더는 망가지지 않을 소년의 보금자리였다.

그는 자신이 이 숲에서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 외로운 것은 자신뿐이었다. 짝이 없는 것, 자라지 않는 것, 소통하지 못하는 것 따위는 소년 말고는 숲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생명들이 보기에 소년은 이전에 본 적 없는 크고 흉포한 사냥꾼에 불과했다. 소년은 점점 기운을 잃었다. 그는 먹는 것도, 숲을 산책하는 것도 그만두고, 이미 썩어버린 나무에 기대어 몸을 웅크렸다. 소년은 점점 움직임이 적어졌다. 그는 며칠, 몇 달을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어느새 그의 온 몸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잎사귀처럼 팔락이는 속눈썹뿐이었다.

그가 눈을 영원히 감아버리기 직전, 소년의 앞에 작은 인영이 나타났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언젠가 소년이 호숫가에서 보았던 자신의 얼굴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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