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몰아치는 사이로 마법처럼 저택이 나타났다.
집을 나온 지 일주일이 되었을 참이었다.
마을의 귀한 예언가로 나는 태어났다. 나의 의지와는 아무 관계없이.
긴가민가하던 집안사람들은 내가 두 살일 무렵 마을의 우기를 정확히 맞히자 그날 바로 큰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그다음 날 마을 전체에 난 선택 받은 예언가로 공인되었다. 어느 곳을 가든 사람들이 머리 숙였다. 이름 두 글자 뒤에 붙는 ‘님’자가 그렇게 당연할 수 없었다. 그건 또래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라 아무도 귀한 존재인 나와 친구처럼 지내려 하지 않았다. 친구가 갖고 싶어요,라고 하자 다음 날 바로 눈 속에 경외감을 띤 아이들이 다가왔다. 그러나 여전히 ‘님’자는 사라지 않았다. 어쩌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죄송하다며 벌벌 떨었다. 난 마을의 가장 귀한 존재이자 가장 소외받는 존재였다.
예언가로서의 임무는 별 특별할 게 없었다. 매년 우기를 예측하고 그 해 마을에 벌어질 중대사를 알려주기,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마치 살아있는 행운의 상징인 양 신 앞에 절을 올리기.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수호신의 수정 조각 앞에 절을 하며 문득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던 사람들도 이런 심정일까 짐작해봤다. 만약 그 사람들도 이런 심정일 거라면, 절을 받기가 죽기보다 싫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공손한 태도로 나의 미래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미 아주 어릴 적에 본 미래라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윤희야, 이미 알 수도 있지만, 열여덟 살 생일이 지나고 나면 넌 호수로 보내지게 될 거야. 무서워 마, 넌 신이 보내준 아이니까,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두렵거나 원망스럽진 않았다. 태어났을 적부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삶은, 또 삶뿐만 아니라 인생은 모두 주어진 흐름대로 흘러갔다. 나도 그럴 뿐이다. 마치 이미 쓰인 책을 읽으며 주어지지 않은 다른 결말을 기대하는 게 바보 같은 짓이듯, 운명 또한 그렇다. 눈앞에 섬광처럼 내리치는 미래의 파편들, 그리고 이름보다 더 자주 불리는 예언가님이라는 호칭... 그 거대한 수레바퀴 앞에서 난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분명 그렇게 믿었을 터인데.
열일곱 생일날, 즉 호수로 가기 딱 일 년을 앞두고 간단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마을 입구에 부적을 붙여 놓는 것이었다. 부정타지 않도록 깨끗하게 입고 혼자 가야 한다고 어머니는 단단히 이르셨다. 임무를 모두 전해 들었는지 가는 길 내내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어쩐지 주변 공기가 가벼웠다. 모래가 부는 뿌연 공기가 산뜻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마을의 끝을 알리는 커다란 석판이 있다. 거기에 가져온 부적을 정성스레 붙이고 두 번 기도를 올렸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한 걸음만 걸으면 마을 밖이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미래가 지금의 나에게 경고를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 이대로 집에 돌아가게 되나요? 이렇게 열여덟 살이 되나요? …. 미래는 침묵했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한 침묵이었다. 침묵은 상냥했다. 그대로, 미지를 향해 뛰어갔다.
폐에 차가운 바람이 가득 차 시야가 흐릿해질 때까지 뛰었다. 어깨에 닿는 머리칼이 엉망이 된다. 멈춰 주저앉으니 떠나온 마을이 작게 보였다. 저토록 작은데도 저토록 모든 것이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될까? 제멋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던 예언의 목소리가 잠잠하다. 난 이제 예언가가 아닌 것일까? 그럼 난 마을에서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일까, ‘님’이라는 음절이 붙지 않는 내가 아직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직은 시기 상조다.
목적지도 모른 채 그저 앞을 향해 걸었다. 배가 고프면 열매를 따고 강가의 피라미들을 잡아먹었다. 그나마 겨울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여름 태양이 뜨거우면 나무 아래 그늘에 쉬면 그만이었다. 위기는 금세 찾아왔다. 평화를 가장한 여름은 돌풍이 다가오자 돌변했다. 어쩐지 너무 고요하다 싶었지, 어쩐지 노을이 너무 붉다 싶었지. 폭풍은 아침부터 조금씩 조짐을 보이다가 저녁이 되자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맑던 하늘에서 알갱이 같은 빗물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흩날린다. 비가 위에서 내리는지, 땅에서 솟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바람이 분다. 나를 지켜주던 나무그늘과 열매와 피라미들이 검은 폭풍 속에서 휘이 날아간다. 난 그저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어떤 언덕에 다다랐을 때, 마법처럼 거대한 저택이 나타났다.
저택은 폭풍 속에서 말 그대로 마법처럼 나타났다.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죽을힘을 다해 두들기니 문이 조용히 열렸다. 괴물 같은 폭풍과 지옥에서 발버둥 치는 것에 필적하는 절박함에 비해 문은 너무나 천천히 열렸다. 키가 아주 작은 노파였다. “잠시만 머물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폭풍이... 너무나 거세요.” 본능적으로 미래를 물었다. 여전히 미래는 침묵했다. 두려움과 설렘이 바람소리보다도 크게 심장을 울렸다. 간절하게 노파를 바라본다. 노파는 대답 없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집은 커다란 저택이면서 또 보기 드문 전통가옥이기도 했다. 기왓장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노파의 발걸음을 따라가니 정갈한 나무 바닥 위에 내 발 모양으로 물자국이 찍혀갔다. 거대한 집에 비해 너무나도 적막하다. 저택 밖으로 희미하게 들리는 비바람 소리가 꿈결같다. 노파는 빈 방 하나를 안내해줬다. 그리고 복도에 있던 주전자 속의 물을 컵에 따라주었다. 따뜻하다. 그 컵을 받아든 순간, 방의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렸다. 한복을 입은 여자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는 “이제부턴 제가 손님 안내를 해드릴게요.”라고 하며 노파를 내보냈다. 노파가 나가자 여자는 나에게로 성큼 다가오더니 손에 든 컵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거 마시지 않는 게 좋아요. 이 집에선 아무것도 함부로 먹지 마세요,”라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었다. 깜짝 놀라 컵을 내려놓으니 이내 수건과 새 옷을 가져다주었다. 언뜻 닿는 손이 따뜻했다. 그는 내 이름을 물었다. 비를 피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의 은근한 다정함 때문인지 경계심도 없이 덜컥 답했다. 여자는 윤희, 하고 입속에서 이름을 굴려보다가 방을 떠났다.
그날 밤, 온전히 떠난 줄 알았던 목소리들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 목소리들이 일주일 만에 가장 먼저 보여준 건, 그 여자가 죽는 모습이었다.
꿈에서 깨자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댔다. 환상과 다르게 현실이 그렇듯, 너무나 생생해서 잊히지 않는다. 한참을 굳어 누워있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방 밖으로 나왔다. 한참 복도를 걸어 문을 열고 나가니 정원이었다. 비는 멈춰있었다. 달이 무척 밝았다. 마을 사람들은 달 속에도 수호신이 깃들어있다고 했다. 어쩐지 모든 걸 들킨 기분이었다. 온갖 꽃과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기려다가, 누군가와 마주쳤다. 그 여자였다. 여자는 나무들 사이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두 시선이 맞닥뜨려지고 우리는 둘 다 한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잠이 안 오시나 봐요.” 여자가 먼저 입을 연다. 난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엔 모종삽이 들려있다. 손에 흙이 묻어 엉망이다. 손을 보는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여자는 살짝 부끄러워했다. “폭풍 때문에 혹시나 다쳤을까 봐 걱정되어서요. 보니까 약한 꽃들 몇 개가 죽기 직전이더라고요. 그래서…” 여자를 보다 나는 문득 물었다. “이름, 안 물어봤어요.”
여자는 별 놀라운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우리. 우리예요.” 답한다. 나도 그의 이름을 입에서 굴려본다. 우리. 너무나 다정한 이름이다.
우리와 나는 정원 깊숙한 곳에 있는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신비로워 보이던 첫인상에 비해 매우 아이 같은 사람이었다. 처음에 수줍어하던 우리는 이내 들떠서 말을 쏟아내었다. “이 집에 찾아온 사람 중에 제 또래는 처음 봐요, 그래서 정말 반가워서... 어쩌면 폭풍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윤희 씨는 폭풍 때문에 고생했을 테니까, 이런 말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기뻤어요. 당황스러우셨으면 죄송해요. 저 친구가 하나도 없거든요. “ 친구. 그제서야 난 우리를 처음 봤을 때 느낀 은근한 다정함의 이유를 알았다. 또, 그가 죽는 미래를 본 뒤 내가 한참이나 뒤척였던 이유도. 우리와 나는 결핍된 것이 같았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요. 저야말로 선물을 받은 것 같으니까” 그리고 난 잠시 할 말을 고르다가 “저기, 처음 봤을 때 놀랐어요. 무척 흰 피부를 가져서요. 눈처럼 흰 피부를 가졌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씁쓸한 얼굴을 한다. “전 눈을 본 적이 없어요. 이 집에서 나가본 적이 없거든요. 보고 싶어요. “ 나는 무척이나 슬퍼졌다. 그는 눈을 보기 전에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무룩하다가도 금세 활기를 되찾고 당신이 본 눈에 대해 말해주라며 나를 재촉했다. 우리와 나는 밤새 녹지 않는 산꼭대기의 눈과 봄이 다가오며 녹기 시작하는 눈, 늦가을 이르게 내리는 눈과 함박눈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그리 들뜰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님’이라는 음절이 따라오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었다.
딱 하루만 묵을 수 있다는 노파의 말에 난 이른 아침부터 떠날 채비를 했다. 폭풍은 깨끗이 사라지고 맑은 하늘엔 태양만이 내리쬐었다. 우리가 대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우리는 내게 다가와 손을 잡고 노파 몰래 내 귓가에 속삭인다. “집에 찾아와줘서 기뻤어요. 어제 해 준 이야기들 잊지 못할 거예요.” 밝게 웃는 우리를 가만 지켜보다가 충동적으로 내뱉었다. “나와 함께 떠날 생각은 없어요?” 우리는 마치 어젯밤처럼 놀라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이 된다. “못해요. 운명이니까.” 운명이니까… 나의 이름보다도 나와 가깝던 단어인데도 무척 서글프게 다가온다. 볼에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진다. 그 눈물은 곧 두, 세 방울로 이어진다. 우리는 놀라지도 않고 나의 눈물을 옷소매로 닦아준다. 그리고 다시 속삭인다. 아까보다도 더 작은 소리로. “내가 죽는 미래를 보았군요.” 놀라 그의 눈을 보니 여전히 참 따뜻하다. 우리는 날 한번 안아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괜찮아요. 날 위해 울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참 다정한 사람이에요.”
그 저택에 다시 가게 되는 일은 없었고, 그 후로 두 번 다시 우리를 만나지 못했다. 나의 예지가 틀리지 않는다면 그는 운명을 따라 갔을 것이다.
구슬이 아래로 떨어지듯 정말 우리가 그저 운명의 노예에 불과하다면, 우리와 내가 만나게 된 것도 당연한 것이었을까? 어차피 죽게 되는 우리가 평생 보지 못할 눈을 닮은 사람이었던 것도, 어차피 다시 만나지 못할 우리와 내가 그토록 서로에게 다정했던 것도. 하필 우리와 내가 둘 다 같은 것이 결핍된 사람이었던 것도. 미래를 속삭이던 목소리는 일주일 동안 침묵했다. 나는 침묵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그러자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삶이 생겨났다.
나는 계속 떠돈다. 이제 열 여덟을 훌쩍 넘기고도 여러 해가 지났다.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동안 눈을 볼때마다 우리를 떠올렸다. 달밤에 나와 다친 꽃을 돌보던, 아이같은 우리. 우리는 내가 선물같은 존재라고 했다. 선물은 우리였다. 우리는 그 날 밤에 선물같이 나에게 다가와, 매 년 눈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내가 예언자인 것을 아는 누군가가 다가와 미래를 묻는다면, 난 하늘을 가르키며 말할 것이다. 운명은 눈과도 같은 것이라고. 눈은 그저 내릴 뿐이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는건 인간이다. 침묵하던 일 주일과 눈과 우리를 위해 난 계속 떠돈다. 나는 이제 미래의 목소리보다도 더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폭풍이 부는 여름이 올 것이다. 의지와 관계없이 예언가로 태어났으나, 난 나의 의지로 윤희로서 살아갈 것이다. 땅에 눈이 쌓여 내가 가는 곳을 따라 발자국이 새겨진다. 문득 내가 서 있는 곳이 길이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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